5월20일 생
모용세가 직계
3남1녀 중 막내
모용세가
요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오대세가 중 하나로, 모용연의 보호를 위해 학관으로 보내긴 하였지만 사파와의 화합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40년 학관 화재 이후로 정사대전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세가의 무공이나 정보, 사파의 흐름이나 교류에 힘쓰고 있다. 전 가주였던 모용영하는 정사대전에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후방을 지원하고, 요녕에서의 정파구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현 가주인 모용 천은 사파의 척결, 즉 절대적인 정파의 승리를 요구하며 정사대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어릴적 사파에게 납치되었던 이후로 무공을 연마하지 못한 모용 수의 경우 물자의 조달, 정세의 파악, 모용천의 군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모용혁루의 경우 모용 연과 함께 요녕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정사간의 다툼이나 싸움을 중재, 다른 세가나 문파와의 교류를 나누고 있다. 그외 다른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요청에 따라 현재 다른 지역으로도 출전하고 있으나, 45년 있었던 습격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활동하는 무인의 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다.
모용세가 가주 ‘ 모용 천(天)‘ 40세
둘째 ‘ 모용 수(收)‘ 36세
셋째 ‘모용 혁루(奕屢)‘ 34세
모용세가 후계 모용 결(潔) 3세
호운 황제 45년 여름, 모용세가
모용세가 소가주의 혼례식에서 일어난 참상으로, 모용세가의 습격을 주도했던 사파인 몇명과 참여했던 다수의 사파인을 그자리에서 체포, 척결했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혔던 독마(毒魔)랑주를 포함한 사파의 중요 인물은 놓쳤다. 이 사건으로 인해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 영하’가 죽음에 이를뻔 하였으나, 모용세가의 모든 의원과 약재를 동원하여 겨우 목숨을 보존하였다. 46년 초, ‘모용 천’에게 가주의 자리를 넘겨주고, 정양을 위해 본가에서 가장 먼 별장으로 은거했다.
가문의 무공 중 쌍검을 이용하는 섬광분운검 (閃光分雲劍)을 익혔다.
오른손의 검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러내면서 왼손의 검을 이용하여 적의 약점을 파고드는 검술로,
양손잡이로 태어나 균형이 잡힌 연에게 가장 잘 맞는 검술이다.
졸업 후 지금까지 이 검술의 극의를 익히기 위해 노력했으나, 겨우 흉내내는것에 그쳤다. 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구결을 이해할 수 없기에 벽을 넘어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채 제 무공에 묶여있다.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45년 가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전할때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특히 사파의 사람에게 해당 일에대해 듣게된다면 입술을 지긋이 물면서 ‘그런일이 있었음에도, 모용세가는 여전히 정파의 오대세가지.’ ‘무너지리라 기대했을텐데 참 아쉬울 따름이야.’ 하고 이야기한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편이다.
정사 대전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말하자면 모용연은 모용세가와 뜻을 함께한다. 정파가 반드시 승리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까지만 최선을 다하고있다. 다만 모용 천과 다르게 모든 사파의 척결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모용연이 그 참상에서 본 것은 사파의 잔혹함 뿐만이 아니라 친구를 위한 마음도 함께였으니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리하길 원한다.
40년, 학관에서 요녕으로 돌아오다.
42년 여름, 유가장에서 여름을 보내다.
43년 -44년 겨울, 남궁 슬과 함께 중원을 유람하다.
45년 여름, 모용세가 혼례식, 사파의 습격을 받다.
46년 가을, 첫 정사대전에 참가하다.
50년 , 친우와의 긴 약조를 지키고, 새로운 정사대전에 발을 딛다.
취미 : 검 손질하기, 노래부르기
좋아하는 음식 : 고기류의 음식
싫어하는 음식 : 해조류가 들어간 음식